- 당신에겐 단 한 가지 길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이 더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 당신의 생각이 주위로부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조용히 제 스스로 자라나도록 두십시오. 그와 같은 성장은, 모든 진보가 그렇듯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뻗쳐 나와야 하며, 그 무엇에 의해서도 강요되거나 재촉당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산달이 되도록 가슴 속에 잉태하였다가 분만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상과 느낌의 모든 싹이 완전히 자체 속에서,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 속에서 완성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러고 나서 깊은 겸손과 인내심을 갖고 새로운 명료함이 탄생하는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이것만이 예술가답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해를 할 때나 창작을 할 때나 마찬가지 입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헤아리는 일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 수액을 재촉하지도 않고 봄 폭풍의 한가운데에 의연하게 서서 혹시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일도 없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여름은 오니까요. 그러나 여름은 마치 자신들 앞에 영원의 시간이 놓여 있는 듯 아무 걱정도 없이 조용히 그리고 여유 있게 기다리며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내게 고맙기만 한 고통 속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가 모든 것이라고!
- 그러므로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이 만들어내는 고통을 당신의 아름답게 울리는 비탄으로 견디도록 하세요.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멀리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것이 당신의 주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당신의 영역이 이미 별들 바로 밑에까지 다다를만큼 커졌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 당신의 고독은 당신에게 아주 낯선 상황 속에서도 당신을 위한 의지처이자 고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바로 고독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당신의 모든 길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모든 소망들은 당신을 동행할 각오가 되어있고, 나의 신뢰는 당신과 함께합니다.
- 우리의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고, 서로에게 인사하는 사랑입니다.
- 고독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자면, 고독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택하거나 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님이 점점 더욱 뚜렷해집니다. 우리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듯이 스스로 속이고 행동할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고독한 존재임을 깨닫고 바로 그러한 전제 아래서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게 아닐까요? 그렇게 되면 물론 우리는 사실 현기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땐 지금까지 우리 눈을 위한 디딤판이 되어 주던 하나하나의 점들이 우리에게서 사라지고, 가까운 것은 더 이상 없고, 먼 모든 것은 한없이 멀게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방에 앉아있다가 아무런 준비나 중간과정 없이 느닷없이 높은 산꼭대기로 끌려간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것까지도 경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유일한 용기입니다. ... 이 점에서 인간들이 겁쟁이였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크나큰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즉 '환각'이라고 불리는 경험들, 이른바 모든 '유령의 세계', 죽음 등 원래 우리와 가까웠던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이것들을 매일같이 뿌리침으로써 우리의 삶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것들을 감지할 수 있는 우리의 감각이 퇴화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 잘 훈련만 시킨다면, 당신의 회의도 당신의 훌륭한 특질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회의는 탐구적이 되어야 하고 비판적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회의가 당신의 무언가를 파괴하려 들면, 그때마다 그 무언가가 도대체 왜 보기 싫은 건지 회의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회의에게 그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시고, 회의를 시험해 보십시오. ...그러면 회의가 파괴자에서 당신의 가장 훌륭한 일꾼 중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 당신께 바랄 것이 있다면 다만, 큰 믿음과 끈질긴 인내심을 가지고 그 웅장한 고독이 당신에게 작용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뿐입니다. 이제 그 고독은 아무리 몰아붙여도 당신에게서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고독은 앞으로 당신이 체험하고 행할 모든 것들 속에 익명의 영향력이 되어 계속해서 그리고 묵묵히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몸 속에서 조상들의 피가 끝없이 움직이며 우리 자신들의 피와 뒤섞여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인생의 전환점마다 결정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외로움은 수많은 펜을 움직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밤, 희미하게 들리는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덩그러니 남아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빛을 바라보며 남몰래 한 단어씩 써내려간 사람이라면 알 것 같다. 완벽하게 혼자인 순간,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 진심이 담긴 말과 글이 탄생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더 깊숙히 고독 안으로 들어가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릴케는 열 통의 편지에 걸쳐 마음 깊은 곳에서 글을 써야할 이유를 찾고, 자신을 울리는 외로움과 그로 인한 슬픔을 알아야만 모든 길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릴케가 말하는 외로움은 결국 '구도(求道)'다. 보잘 것 없어보이는 일상, 단순한 열정이나 자연과 신에 대한 회의, 이 모든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는 일이 글쓰기다. 평생토록 짜맞춰야 하는 복잡한 그림을 이해하려면 어서 빨리 고독해져야 한다고, 고독이라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삶의 자세, 시를 노래하는 마음, 성장을 기다리는 법 모두 '외로움'이 출발점이라는 릴케의 이야기는 어느 면에선 원론적이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음 속으로 조용히 퍼져나간다. 사랑마저도 고독과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주는 일이라는 릴케의 말처럼, 결국 고독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일까.
확신에 찬 아름다운 언어를 만나는 일은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번역체 특유의 잦은 접속사 사용이 아쉽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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