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시콜콜한 이야기

기록하지 않으면 일상에 매몰된다


# 첫 주치곤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잡다한 일(가령 전화받기, 손님응대, 복사 심부름 등등) 외에 실무적인 일도 도왔으니까. 대략 어떤 시스템으로 흘러가는지 알겠다. 어떤 면에선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고, 교집합의 영역은 적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개개인이 전문화된 일의 양은 상당한듯. K 비서님만 해도 정책 개발과 법안 발의, 회의 참석 및 질의 준비 등의 일을 다 맡고 있다. S 비서님은 지방 민원 처리 + 선거 관련 일로 바쁘시고. 아무튼 그럭저럭 잘 적응할 수 있을 듯 싶다. 다만 건강을 잘 챙겨야 할듯.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사무직의 특성상 소화 불량 + 허리 통증 등 소소한 질병(;;)이 생기기 쉬우니..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할텐데 시간 조절이 어떻게 될 수 있을런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고작 2개월 했을 뿐인데, 확실히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재미 또한 알게 됐나 보다. 지난 수요일에 신었던 구두의 통증은, 운동을 쉬면서 굳어졌던 몸을 한층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틈틈이 열심히 운동하자.

# 어제 모처럼 전철을 타고 집으로 내려왔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배병삼 영산대 교수의 '풀숲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하다.' 개인적으로 <한겨레>에 실리는 칼럼을 접하며 흥미를 갖게 된 필자다. 확실히 동양 사상이 더 가깝다. 서양의 이런저런 철학과 사상, 논리들은 일단 이해하기 위해선 분석해야 하고, 머리를 끄덕이는 일조차 쉽지 않다. 동양 사상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쉽게 머리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래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무튼 책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이 책에선 유독 지은이의 어린날에 대한 추억, 그 날들의 풍경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첫번째는 바로 큰어머니의 이야기다. 그의 죽음을 통해 지은이는 '농경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어린 눈에 축구장만큼 넓었던 큰집 마당에는 가을이면 나락단들이 ㄹ자로 빼곡히 들어찼다. 밤이면 여기저기 가설해놓은 삼십 촉 전구들이 장대 끝에서 끄덕거리고, 밤새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에 온 동네가 등천을 하면, 큰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들이켠 다음 또 밤참 준비에 바빴다. 어린 우리는 그 나락단 사이를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참새처럼 지저귀었다. 농경의 시대였던 것이다.

…근본이란 식물의 뿌리를 이름이요, 말절이란 그 잎사귀를 이름이다. 그러니 '근본 없는 놈'이란 말은 그야말로 뿌리 없는 식물이라는 뜻으로 당대의 가장 큰 욕설이 되는 터였다. 그러므로 조상을 뿌리에, 후손을 잎사귀에 비유하는 유교적 세계관이 이 땅에서 번창한 것도 다 내력이 있는 일이었다. 허나 농경과 본말론에 기초한 이 땅의 문명은 큰어머니대에서 끝나버렸다.

-'농경시대의 추억' 중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삼십 년 전 어느 추석날 하루'란 글이다. 예나 지금이나 명절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시끌벅적한 정도와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일가 친척들 간의 정(情)의 깊이는 차이가 나는듯. 언젠가부터 명절에 사촌과 만나는 일이 어색해졌다. 함께 놀이터에서 얼음땡을 하고 밤이면 언덕배기나 텅 빈 밭 한 가운데서 불꽃놀이를 하던 오빠들은 수염이 거뭇거뭇하고, 배가 나온 아저씨가 된지 오래고 유식한 척, 깊이 있는 척 음악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촌은 언젠가부터 반가운 듯 아닌 듯한 사이가 됐다. 명절은 더이상 예전처럼 유쾌하지 않다. 튀어가는 기름을 피해가며 전을 부치고, 음복할 때만 기다리다 후다닥 밤부터 집던 그런 날은 이제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또 하나 슬픈 일은, 이 풍경들이 사라져가는 일은 내가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그 문화 자체가 구시대의 낡은 유산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

아마 나는 손수 김장을 하긴 힘들 것 같다. 아니 안 하게 될 것 같다. 제사 같은 건 명절처럼 꼭 해야 하는 날 제 몫을 하는 정도? 가족당 인원수가 줄고, 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가족간 거리가 멀어지고 점점 그렇게 되는 세상이니까, 도란도란 모여서 송편을 빚고 떡국을 먹는 일도 어려워질 것 같다. 농경시대의 추억은 그저 나락단 사이를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참새처럼 지저귀는 것뿐이 아니다. 그 추억은, 그 풍경들 안에 사람이 있었기에 짙게 남아있다. 하지만 모르겠다. 물론 우리 특유의 문화가 완전히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점점 그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냥 씁쓸하다. 우리는 나중에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아닐까.

# 아이가 엄마에게 남을 배려하고 예의범절을 익히는 일은 어릴 때 시작된다. 그때엔 엄마가 혼내도 아이는 반항하지 않는다. 물론 불만을 갖거나 '왜'라고 물을 수는 있지만. 여튼 그러다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때가 온다. 그때부터 부모는 골치아프다. 더 이상 수직적 관계만을 요구할 수 없게 되니까.

지하철에서 한 자매를 봤다. 우적우적 큰 소리로 과자를 씹어먹고, 깔깔거리며 웃고 떠드는 아이들은 한편으론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반면 짜증도 났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언니가 동생에게 '거지'라고 하자 동생은 엄마에게 일렀고, 엄마는 그 둘을 중재하느라 바빴다. "언니가 동생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리고 너(동생)도 그래 $#%$%^##^%$^" 저러다 언젠가부터 아이가 제 생각을 갖게 되는 때, 어쩌면 그때가 사회 갈등의 시작점은 아닐까.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 결국 오늘의 글은 뜬금없는 기록이랄까.

'시시콜콜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즐거운 하루  (0) 2010.04.12
-  (0) 2010.04.03
새로운 시작  (5) 2010.03.19
불편한 날들  (0) 2010.03.03
요즘에는,  (0) 201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