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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희한한 풍경

http://blog.hani.co.kr/freehwa/25945

나는 법은 잘 모른다. 최 할아버지에게 고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말 간첩 행위를 했는데 숨기고 아닌 척 재심을 청구했는지 아닌지는 철저하게 법과 구체적 증거로 따지고 가릴 일이다. 검찰 말마따나 “심리가 불충분했다”면 항소할 수 있다. 항소는 정해진 법적 절차로, 적법하다. 그런데 나는, 눈 앞에 그림을 보고 말하듯 고문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줄줄이 묘사하는 최 할아버지의 설명이 거짓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온 몸이 멍투성이 온 손이 피투성이가 돼서 수사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나왔을 때, 한 민간인 집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생각해보니 “내가 어딜 가더라도 그들을 피할 수 없고, 사람들이 내 말을 믿고 날 보호해주진 않을 것 같아” 자기 발로 터벅 터벅 다시 고문을 받던 장소로 돌아갔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무죄 선고 뒤 그나마 잠을 이룰 수 있었는데, 다시 그때 얘기를 꺼내고 검찰과 다퉈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 숨도 잘 수가 없다”는 그의 말도 거짓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재심 선고 과정에서 봤던 할아버지들의 ‘웃으면서 우는’ 희한한 눈물이 거짓들이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법으로 따질 일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상소심 결과들이 어떻게 나오든, 나는 또 한번의 `희한한 풍경'들을 보게 됐다. 오는 5일 오전 11시, 1974년 유죄를 선고받고 옥사했다 지난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항소해 다시 재판을 받게 된 고 장석구씨의 첫 항소심 공판이 열린다.

-송경화 <한겨레> 기자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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