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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매주 세월호를 탄다

내 일이 무섭다는 걸 실감한 때는 올해 초였다. 선배 지시로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 일지를 정리하기 위해 네이버 옛날신문라이브러리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사실 이 서비스를 처음 쓰는 건 아니었다. 예전엔 1920년대 신문까지 찾아서 기사를 쓴 적도 있었으니까. 그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기사 정말 똑바로 써야지.'


강기훈씨를 유서대필사건의 주범으로 '몰고' 가는 기사들, 그 끝머리에 선명히 박혀있는 바이라인을 보며 나는 무서워졌다. 몇 십년 뒤, 아니 내가 죽어서도 나는 기사로 남는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지금도 가끔 누군가와 비슷한 주제를 두고 얘기를 할 때면 난 꼭 이 경험을 언급한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다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어쩌면 몇 십년 뒤가 아니라 몇 달, 혹은 며칠 뒤에도 나는 내 기사를 보며 부끄러워할 거다. 지금도 옛 기사를 보면 몇 가지 오류들이 꼭 눈에 밟힌다.


기자가 기사를 똑바로 써야 하는 건, 그 펜 끝으로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어서지만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사관이 없는 세상에서 뉴스는 역사가 된다. 100%의 진실을 담아내지 못하더라도 0.1%의 오류를 피하고 정직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어쩌면 모든 정보들이 공개되고, 세상의 속도는 덧없이 빨라지는 오늘날 기자에게 주어진 역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2014년 4월 16일 나는 단원고에 있었다. 아직도 휴대폰에는 그날 오열하는 부모들의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신 없는 와중에 찍어둔 학생들 명단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세월호 특별취재팀에 참여하며 그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기억했으며 가슴으로 느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야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정확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운좋게 좋은 선후배들을 만나 그 생각의 많은 부분을 구현할 수 있었다. 힘든 와중에,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을 캐묻는데도 기억을 더듬거리며 증언해주신 분들도 계셨다.


그 모든 도움과 행운 덕분에 상을 받게됐다. '4월 16일 세월호 : 죽은 자의 기록, 산 자의 증언' 페이지가 처음 문을 연 날 느꼈던 뿌듯함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의 기록이 조금이나마 제몫을 한 것 같아 많이 기쁘다. 상을 받아 좋은 마음도 감추기 어렵다.


하지만 오늘 열리는 시상식에는 가지 못한다. 나는 지금 안산에 가고 있다. 오늘 법정에는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증인으로 나온다. 나는 또 종일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려야 한다. 다행히 손톱 길이도 적당하고, 며칠 쉰 덕분에 어깨와 목도 괜찮은 편이다. 


매주 세월호를 탄다. 선원들과 청해진해운 관계자들의 재판을 취재하면서 그날의 사진, 기록, 사람들의 증언을 계속 접하고 있다. 계속 정리 중인 타임라인 작업을 하며 '세월호 이후'도 곱씹어 보고 있다. 오늘도 세월호를 타러 간다. '트라우마'라고 말하기는 거창하지만, 가끔은 버겁다. 유족들을 지근거리에서 보는 현장 기자들에 비하면 편하게 일하고 있지만, 부끄럽지만 그렇다. 그럼에도 오늘도 세월호를 타러 간다.


기자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이미 옛 이야기라고 고개를 저어왔다. 많은 기자들이 좋은 기사를 쓰는 걸 옆에서 목격하는 지금도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가 남기는 기록이 조금이라도 선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아픈 사람들에겐 위안이 되고 반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성찰을 안겨주는 것이길 바란다. 그것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당장 팔 아프고 배고프고 피곤한 일쯤이야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래야만 언젠가 '옛날신문 라이브러리'에 내 이름이 등장할 때, 아주 조금은 덜 부끄러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