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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세월호 기획 에필로그

5월 16일 페북과 트위터에 올렸던 글.




1. 기획팀 회의 첫날, 선배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냥도 아니고, "시간을 이기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고민해봐도 다른 아이디어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복기'해야 한다는 생각만 계속 났다.


2. 다음날 구글닥스로 엑셀파일을 만들었다. 목표는 '시간의 재구성.' 일단 4월 16일 상황을 충분히 되짚어봐야했다. 그날 9시 27분부터 16시 35분까지 나온 <연합> 기사들을 정리했다. 흐름은 보였지만 분단위로 상황을 복기하기엔 자료가 부족했다.


3. 늘 그렇듯 일 하나를 잡아도 다른 일이 생겼다. 셋째날에는 갑작스런 인터뷰 처리에 새벽 3시쯤 귀가했다. 세 시간만 자고 안산으로 갔다. 유가족들의 진도행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4. 비몽사몽한데 계속 눈을 붙일 수 없었다. 1시간쯤 자고 일어난 뒤 4-5시간 동안 옆자리에 앉은 아버님과 대화했다. 둘째딸을 잃은 그분은 순간순간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셨다. 딸 얘기가 나올 때였다.


5. "이런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이 일이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세요?"라고 여쭸다. 그분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얘기하셨다. "뭐, 기억되겠어요."


6. 아니라고,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나는 "진짜 그러면 안 되는데요"라고 했다. 알고 있었다. 결국 타자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종일 관련 뉴스를 찾던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이겨보고 싶었다.


7. 하지만 여전히 알고 있다. 지금 이 시각 지하철 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웃고 떠든다.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8. 기억하는 일이 가혹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선후배들과 함께 지난 3주 동안 만든 '작품' 또한 그런 운명 아닐까. 물론 부족함 때문일 수도 있다.


9. 최선을 다한 것은 분명하다. 팀장을 맡은 선배는 원래 일중독자이지만, 이번엔 더했다. 3주 내내 풀가동을 했다. 다른 팀원들은 사람을 찾고 자료를 구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녔다. 막판 며칠은 새벽 퇴근이 당연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 그래도 꼭 한 번 이겨보고 싶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죽은 자의 기록과 산 자의 증언을 기록하는 일도. http://omn.kr/829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