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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세월호,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들.

0416


- 사람들은 숫자 하나에 울고 가슴 졸인다. 그걸 알면서도 기자들은 속보를 써제껴버린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에 사람들은 비통해한다. 그걸 알면서도 나도 썼다. 그런 기자들을 사람들은 욕한다. 꺼지라고, 저리로 좀 가라고, 카메라 치우라고...


그저 한 없이 마음이 무겁다. 집계 하나 똑바로 못하는 그지같은 정부 때문에 화도 났지만, 어디 가족들만할까..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0417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네? 어머니 한말씀해주세요 네? 어머니 한가지만 더요 네?'란 잘못된 설명이 달려 퍼진 사진 한 장.



-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이 돌고 있다. 저 장면은 생존자 학생과 처음으로 전화연결된 어머니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다 떠나서 항상 이런 욕을 먹는 재난취재, 더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기자인데 왜 또 다른 하이에나가 되는가.



- 기사를 쓰는 사이에 회사가 사과문을 냈다. 내 사과문이기도 하다.


"'학생 전원구조' 오보로 피해자 가족과 독자들께 혼란과 안타까움 드린데 대해 사과 드립니다. 아울러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합니다."


http://omn.kr/7tjt


쓰던 글은 어른들의 반성이 이어진다는 주제였다. 그저 미안하단 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뭐가 미안한지 얘기하고 싶었다. 이건 내 반성문이기도 하니까. 

http://omn.kr/7tl1


이제 기적이란 걸 믿어보자.


- 어머니가 왜 무릎을 꿇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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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급한 오보, 예의를 상실한 추측성 보도, 유가족을 화나게 하는 일방적 보도, 이런 것들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특종경쟁으로 무엇을 기대하는가. 저널리스트, 앵커들마저 흥분하여 특종과 시청률에 함몰되면 차가운 ‘미디어 배척의 시대’를 맞게 될 지도 모른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065


0419


- 내가... 취재했던 가족이다... 우리집이랑 비슷하네했던, 마냥 서있던 나에게 여기 앉으라며 언니가 의자를 갖다주던, 살아있는 아이들 연락처 확인하려고 하던 아빠에겐 볼펜을 빌려주고 엄마와 대화했던...


- 어떤 정부에서 이 사고가 났어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 몇년째 점점 더 나라의 바닥을 보는 기분이다.


- 고대 안산병원에서 환자 보호를 위해 취재진을 통제하고 있단다. 한 의학전문매체는 "피해자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고, 한 지역지는 "국민의 알권리를 외면했다"고 썼다. 후자는 현재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까 기레기 기레기 하는 거다. 무슨 놈의 알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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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색현황과 잠수사 관련 부분은 다른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혹은 않은 내용이다. 왜 그랬을까. http://m.dispatch.co.kr/?c=v&m=v1&idx=100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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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게 포퓰리즘이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83029


- "한두명의 개새끼와

한두명의 영웅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0423


- "문제는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잠수 512명, 헬기 29대, 함정 171척.”(17일) “잠수 535명, 헬기 31대, 함정 173척.”(18일) 사고 후 신문과 방송은 정부의 대대적인 구조 계획을 쏟아냈다. 하지만 현장은 달랐다. 배치된 건 맞지만 뒤늦은 대응과 구조 장비 설치에 시간이 지체되면서 실제 수색에 투입된 인력은 수십 명에 그쳤다. 가족들은 “언론이 정부 입장만 보도하고 우리 목소리는 무시한다”고 받아들였다. ‘발표 받아쓰기’가 낸 상처를 덧낸 건 무분별한 속보 경쟁과 추측성 보도들이었다.


취재 방식도 불신의 골을 깊게 했다. 부두에 앉아 눈물을 흘리던 20대 여성은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소리쳤다. “말 같지 않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들은 취재 대상이나 피사체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름과 사연을 묻고 셔터를 누르는 것까지 ‘기자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장에 급파되는 기자들은 재난자들에 대한 취재 기법과…취재·보도 과정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한겨레신문 ‘정석구 칼럼’)는 고백에서 중앙일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자유롭지 못하다."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4513465


- "선상 ‘극장’에서는 파티가 열렸고, 언론은 ‘행정안전’을 ‘안전행정’으로 바꾸었다는 식의 그들의 그럴듯한 말과 연출된 행동만 비췄다. 선상 무대의 주역들은 개인용 구명보트로 탈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을 본 대한민국호의 말단 선원들은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권력자들이나 대기업의 범죄가 단죄되지 않고, 국민들이 그것에 항의할 수 없는 사회에서 관료조직은 억압기구에 불과하고, 국민의 주권은 상실된 상태이며, 사회는 이미 파괴되었다. 이번 사고에서 도망간 선장·선원은 윗사람들을 보고 따라한 사람일 따름이고 기업이 그들을 대우해준 대로 행동했다. 사회가 파괴되면 작은 사고도 대참사가 되고, 대참사의 희생자들은 주로 선실 바닥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배의 본격적인 침몰은 이제부터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3837.html


- 나는 지금 그 악마가 웃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웃지 못하게 만들어야한다.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의무다.


"엉터리 건물을 지어 붕괴시킨 백화점 회장, 지하철에 불을 지른 미친 남자... 사회가 악인을 만들기는 쉽다. 특히 수사기관은 유족의 한을 풀기 위해 악인을 찾아내고, 때로는 억지로 만들어내고 나름대로의 '정의'로 철저히 문책한다. 물론 책임 있는 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악인을 규탄하는 재판에서 업계의 구조적 착취 구조나, 승무원의 안전 교육을 게을리하는 업계 구조, 행정기관의 책임 등 배경 요인 규명을 기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책임 추궁과는 일단 상관없기 때문이다. 사법 절차와는 별도로 원인을 조사할 수 있는 독립성 높은 사고 조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쁜 놈을 교도소로 보내고 사건은 잊힌다. 사회는 사고의 교훈을 일시적으로 공유할 뿐 또 사고가 되풀이된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고를 대부분 사람들이 잊어버렸듯이.


선장, 선원, 해운사만이 아니라 법규와 정부기관의 책임을 검증하려는 보도가 점점 나오기 시작한다. 늙은 현장 책임자 한 명을 악마로 만든 사이, 정말 나쁜 악마는 숨어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선장의 행위를 '살인 같은 행태'라 비판했다는데 선장을 화풀이 틀로만 소비하지 말고 정말 악마와 오래 시간을 걸쳐 싸워야 할 것이다." 

http://www.huffingtonpost.kr/taichiro-yoshino-kr-/story_b_5189479.html?utm_hp_ref=korea&ncid=tweetlnkushpmg00000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