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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선한 사람들을 믿어보자

묻는 사람, 그리고 듣는 사람. 기자에겐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다. 여기서 '듣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묻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둘 중에서 사람들이 흔히 '기자' 하면 떠올리는 덕목은 아무래도 '묻다' 같다. 최근 화제였던 오바마 미 대통령의 G20 기자회견 동영상에서도 한국 기자들이 '무능력하다'고 비판받은 가장 큰 이유는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니까. 언젠가 읽었던 김종배씨 책에서도 뉴스를 볼 때 '합리적 의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뉴스를 만드는 기자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정치인에게, 검찰에게 기자들이 자꾸 묻는 이유도 같다. 선출받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들은 '가진 자'다. 한 사람의 일생은 물론 사회를 흔들 수도 있는 힘말이다. 법조팀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힘 있는 검찰을 지근거리에서 보면서 그들의 말과 행동에 합리적 의심을 품고, 때론 신뢰하기도 하면서 힘 있는 사실들을 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그 힘 때문에 기자는 어쩔 수 없이 '의심'이란 색안경을 끼어야한다. 그런데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문제 같은 일이 터지면 안경의 색은 더 두터워진다. 그들이 말하는 법치주의, 사회의 정의와 질서, 안녕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지향하는지 고깝게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각조각난 사실들을 합리적 의심으로 꿰어맞춘다음 '진실'이란 그림으로 완성하는 일, 결국 기자나 검사나 비슷한 직업이다. 이 단계에선 자신이 무엇을 꿈꾸고, 어디를 원하든간에 이성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만난 그도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물론 앞으로 어떤 사건에서 만나든 나는 그에게 '합리적 의심'을 품어가야겠지만. 


개인이냐 구조냐를 떠올리면, 늘 한 사람은 미약하다고 여겨왔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중요하다고 믿어온 까닭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일을 볼 때 '에이 저건 그냥 혼자 저러는 거잖아'라고 판단할 때가 많았다. 최근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 오늘은 문득 이 문장이 떠올랐다. 


'선한 사람들을 믿어보자.'


'한 사람의 열 걸음'으로 착각했던 일들이 결국 '열 사람의 한 걸음'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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