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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변호인>과 용산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당신의 소중한 돈을 지켜드린다'던 송우석 변호사는 '이라믄 안 되는 일'을 막기 위해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 위더스 필름


“이런 기 어딨어요? 이라믄 안 되는 거잖아요.”


그가 말했다. 탄식처럼 토해낸 한 마디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속물이다, 체면머리 없다는 손가락질에도 돈 버는 일이 더 중요하다던 변호사 송우석의 이야기다. 지난 월요일, 동생을 핑계로 다시 한 번 영화 <변호인>을 봤다. 여전히 저 한 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그가 ‘이러면 안 된다’고 한 일은 단순했다.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는 시국사건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됐다. ‘빨갱이’란 이유로 구타와 물고문, 통닭구이 등을 감내해야 했다. 진우 어머니는 아들의 생사도 모른 채 두 달 가까이 부산 바닥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국가권력은 권위를 내세우며 두 모자의 일상을 조각조각 내버렸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81년이지만, 현실은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라믄 안 되는 일’은 2014년 1월 현재에도 부지기수다. 극장을 찾은 날도 마찬가지였다. 1월 20일, 용산참사 5주기였다. 용산역 쪽에서 바라본 옛 남일당 자리는 이날도 황량하고 황망했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용산역 아이파크몰을 찾을 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저럴 거면서 왜….” 한숨 같은 분노, 일갈 같은 탄식 뒤로 멀리 솟아있는 빌딩, 터조차 닦지 못한 대지 위에 섬처럼 솟아있는 그 건물들이 보였다. 2014년 1월 20일에도 다르지 않았다.


도시 속 사막이 되어버린 그곳엔 한때 사람이 있었다. ‘그냥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비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벽, 가족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눠 먹는 일상, 작고 어설프더라도 희망이란 걸 품고 살 수 있는 권리, 그런 소소하고 눈물겹게 아름다운 삶들이 있었다. 도시는, 빠르고 크고 높은 것만 좇아가는 도시는 그 삶들에게서 뿜어 나오는 빛을 보지 못했다. 아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됐고 ‘붉은 울음’ 속으로 스러져갔다.


사진작가 노순택씨가 2009년 1월 20일 찍은 남일당 모습. 그의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붉은 울음'이란 말이 떠올랐다. ⓒ 노순택


‘이라믄 안 되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가족들 동의 없이 희생자들의 부검이 이뤄졌고, 함께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던 아들과 아버지는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됐다. 검찰은 3000여 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재판부 명령을 끝까지 거부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그들을 내몰던 일을 자랑스러워하던 이들은 요직을 차지했다. 5년이란 세월 동안 ‘이라믄 안 되는 일’들에는 끝이 없었다.


1주기 때 용산을 찾았다. “잊지 말아달라”는 사람들의 부탁만 귓가에 윙윙대던 날이었다. 결심을 했다. 잊지 않아야겠다고. 그럼에도 용산을 기억하는 날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날들이 더 많았다. 늘 그랬고, 앞으로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용산이 곧 일상이다. 삶이다. 이충연씨는 ‘누군가’ 중 하나다. 얼마 전 그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용산은 잊히면 안 된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늘도 망각과, 침묵과 싸우고 있다. ‘이라믄 안 되는 일’을 막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