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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또 한 명이 죽었다.


KBS 드라마 '공부의 신'


내게 공부란 무엇일까. 고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크게 두 가지 감정이 든다. 하나는 '지독하다', 또 하나는 '안쓰럽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2001년의 어느 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와 우적우적 빵을 먹는 내게 엄마가 물었다. "서울 갈래?" 대답하기까지 찰나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1년 전부터 '아 서울에 가고 싶다'며 혼자 발을 동동 구르던 나였기에.


그렇게 서울에 왔다. 2001년 7월 17일, 이사를 마치고 "이제 간다"며 아파트 현관문을 나선 아빠의 등을 보자 실감이 났다. 동생과 나, 단둘이구나.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우리에게 아낌없던 부모님을 알기에 참 독하게 공부했다. 전학가기 전날이었던가? "강남으로 간다며? 꼴찌할 각오해야겠다"던 한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불지른 까닭도 있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 오늘은 뭘해야하는데, 성적이 잘 나와야 할 텐데를 끝없이 고민하며 살았다. 동네 문구점에서 1000원짜리 다이어리를 사서 그날그날 할 일을 쓰고, 동그라미나 세모, 가위표 또는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그 누구보다 나는 나를 감시했다. 돌이켜보면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아니 지독했다. '하루를 일년 같이, 일년을 하루 같이'란 좌우명에서 무게가 남달랐던 쪽은 '하루를 일년 같이'였으니까. 


스스로도 놀라운 게, 밤 8시면 동아채널에서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20분 정도 보여줬다. 그럼 8시 20분부터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가 밤 10시쯤 다시 지상파 드라마를 챙겨봤다. 자정이면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 6시~6시반쯤에는 눈을 떴다. 많은 날들을 '1등'으로 등교했다. 이런 일과를 어긴 적이 거의 없었다. 방학 때조차 다르지 않았다. 딱 네 글자로 표현 가능하다. '아등바등.' 버티고 또 버티는 것만이 일상의 전부였다. 여전히 그 시절의 내가 안쓰러운 이유다.


이토록 '독한 년'이었던 나 또한 '요즘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조차 무섭다. 갈수록 커져가는 교육 격차,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입시제도, '과잉'이란 수식어가 아깝지않을 정도로 어려운 대학별 평가문항... 결국 또 한 명의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성적이 좋았던 만큼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을" 정도로 괴로웠단다.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옆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몇 십초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저 미안할 뿐이다.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공부란, 영원히 '족쇄'일 수밖에 없을까. 지독함 또는 외로움, 고통, 안쓰러움 같은 마음 저릿한 감정들만 계속 안겨줄 수밖에 없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아니 풀리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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