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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나는 스타벅스에 간다.

카페 라떼를 즐겨 마신다. 단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따금 헤이즐넛시럽을 추가한다. 또 한 번 커피숍에 들어가면 몇 시간씩 앉아 있다 나오기 때문에, 혼자 갈 때면 대개 큰 컵으로 주문한다. 여느 커피전문점보다 쉽게 콘센트를 확보할 수 있고,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어 스타벅스를 자주 찾는다. 그리고 외친다.


"그란데 라떼에 헤이즐넛 시럽 추가요!"


스타벅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카페 라떼 설명 사진. ⓒ스타벅스


헌법 위의 이마트’를 취재할 때도 그랬다. 관련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몇몇 스타벅스에서 서너 시간 넘게 틀어박혀 있었다. 아마 상냥한 웃음으로 "네, 고객님"했을 직원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가방 속에, 노트북 안에 그가 일하는 스타벅스를 국내에 들여온 신세계 그룹의 불법행위를 다룬 자료가 꾹꾹 들어 있으리라고는.


한 달 내내 '이마트'를 주어로 한 문장을 수없이 썼다. 선배와 동기의 기사까지 합하면 모두 40개에 달한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힘든 취재였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은, 역시 괜한 말이 아니었다. 기사에 넣을 팩트(fact)가 많을수록 무엇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하는 일이 관건인데, 쉽지 않았다. 이 한 편의 글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하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어 그나마 어깨가 덜 무거웠다. 어쨌든 끝났다. 그리고 아마 나는 예전처럼, 변함없이 스타벅스를 찾을 것이다.


힘들다는 핑계로 "이마트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쉰 적은 있지만 그것이 본심은 아니었다(설령 본심이어도, 내 저주 때문에 이마트가 망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함께 한 선배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이마트를 비판하면서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일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마트가 망하길 바라지 않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이마트 로고로 헌법을 짓밟고, 그 뒤로 자신들의 불법을 감추는 일을 멈추길 원했을 뿐이다. 


신세계그룹 이마트의 직원 사찰과 노조탄압 실상이 폭로되고 있는 가운데, 1월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이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본뒤 로고 앞을 지나가고 있다. ⓒ유성호


‘이마트 불매’를 외치는 사람들도 등장하긴 했다. 누군가 말했던가. 자본에 저항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불매운동’이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너무도 '소비하는 삶'에 젖어 있고 기업이, 프랜차이즈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다. 그 익숙함과 결별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평범하다. 스타벅스가 주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좇으면서도, 편의점 대신 민우슈퍼 아주머니와 수다를 떠는 일상의 재미와 정치성을 추구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쩌면 '재화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경제 체제'란 표현보다는 '정치와 윤리, 현실과 이상을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하는 곳'이 자본주의를 더 생생하게 정의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저울질 끝에 나는 ‘스타벅스를 피하는 법’보다는 ‘스타벅스를 감시하는 법’을 택하기로 맘먹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거리는 없다. 이마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형마트 안 가기, 공정무역 커피 마시기 등 ‘정공법’이 아닌 ‘꼼수’를 선택했다고 비판할 이도 있으리라. 뚜렷한 안도 없는 상태에서 '감시'를 말하는 일이 너무 공허하다고 지적받을 수도 있고. 그러나 '무너뜨리기'보다는 '공존하기'를 바란다. 스타벅스와 동네 카페가, 이마트와 민우슈퍼가 함께 있길 원한다. '다른 세상'이란 꼭 하나를 없애 다른 것을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에 또 하나를 더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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