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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정상범주 안에서

후배(그 일을 내게 알려준)가 이번 글이 트윗 세계에서 반향이 크더라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걸 특별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애들이 얼마나 많이 죽는데..” “넌 기자니까 워낙 별의별 일을 다 봐서 그렇지. 물정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 “그래도 그렇지..” 그의 말마따나 트윗 세계에서 꽤 많은 반향이 있었고, 보론 삼아 몇 자 적어본다.

현재 한국의 자살율이 OECD 1위라는 건 다 알 것이다. 한국의 자살율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 통계청 통계가 아닌 경찰청 통계는 그보다 훨씬 높아서 경찰청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이 OECD 자살율 1위가 된 건 이미 98년이다. 한국사회가 이른바 본격적인 신자유주의화를 시작했다는 그해다. 그리고 한국에선 자살이 사고사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한다면 한국의 자살율은 가히 독보적인 1위인 셈이다. 가슴 아픈 일은 자살이 현재 15~24세 청소년 사망원인 가운데 1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특히 아이들의 자살은 주요 매체에 거의 보도가 되지 않는다. 사연이 없어서 기사거리가 안 되어서가 아니다.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는데 사연이 없겠는가. 보도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 즉 모방 자살 현상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라는 걸 만들어 언론사에 보도 자제를 요구하고 있고 언론사 스스로도 무절제한 보도가 반사회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정작 베르테르 효과가 가장 높은 유명 연예인 자살은 빠짐없이 보도가 되는 이유는 그게 그런 부정성을 불식할 만한 기사거리라 여겨지고, 앞서 말한 권고 기준의 '유명인'에 대한 내용이 애매한 것도 그 원인으로 지적된다. 아주 간혹 아이들의 자살이 보도된다. 이를테면 조선일보엔 “외고생 또 투신 자살”이라는 제목으로 “명문대 진학률이 상위권인 D외고 학생 2명이 한 달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라는 꽤 구체적인 기사가 실린 적도 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며 그게 개인적인 이유를 넘어 모든 아이들이 겪고 있는 지옥 같은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이다. “이제 됐어?”는 한 아이가 제 엄마에게 남긴 말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말이다.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잘살게 하겠다’는 이 어리석은 대열에 아이를 참여시키고 있는 한 그 아이는 바로 내 아이이며 그 엄마는 바로 나다. 내 아이는 아직 살아있다고 혹은 나는 아직 아이가 없다고 해서 남의 일로 생각하는 건 지성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는 후배가 말한 ‘특별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연예 가십기사’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마음에 걸린다.

다른 사람이 겪은 아픈 일에 대해 ‘정상 범주’ 안에서 반응할 줄 아는 것은 우리가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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