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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마음에 남아

"실천했으냐 못 했느냐의 문제일 뿐"

김훈, 한국언론문화포럼 강연에서.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31/2014103103307.html?rsMobile=false

- 요즘에는. 나는 글을 쓸 때 되도록이면 개념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개념어가 아닌 말들, 그러니까 삶의 일상성, 생활의 구체성, 삶의 육질성과 닿아있는 말들을 가지고 글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개념어라는 것은 삶의 구체성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고 권력화된 언어인 것이다. 개념이 설정한 틀 안에 들어오지 않는 모든 구체성을 제거해버린다.

- 누군가 인간의 신념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신념을 가진 자의 편이 아니고 의심을 가진 자의 편인 것 같다. 신념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내가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의심을 가진 자들 쪽에 더 많은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정의라는 것은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의 바탕 위에다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것이지 거꾸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나 신념의 바탕 위에 사실을 세우려고 하면 다 무너져 버린다. 사실의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언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사 다닐 때 선배들한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얘기다. 그것을 우리가 실천했으냐 못 했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그걸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 강자와 약자가 공정거래를 하면 공정한 약육강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시장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구원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세월호가 우리에게 주는 반성이 되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때 그 얘기를 했던 것이다.

- 유익한 정보가 없으면 기사가 아니다. 쓰레기다. 요즘 기자들이, 신문을 보면, 수집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고 멋진 수사를 하고 멋진 문장을 쓰려고 한다. 김훈이처럼 멋진 폼나는 문장을 쓰려고 하니까 그게 다 쓰레기로 보이는 거다. 기자의 본질은 ‘스파이’다. 남을 염탐하는 것이다. 저놈이 무슨 생각을 하나, 무슨 공작을 꾸미고 있나 염탐을 해서 쓰는 거다. 자신이 수집한 팩트들을 관리하고 팩트가 유용한지 아닌지, 남에게 전달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해서 논리적으로 배열해서 전달하는 것이 신문기자다. 어떤 기자들은 정보도 없이 대중을 리드하는 사상가가 되려고 한다. 그런 것은 좋은 기사 문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보에 바탕하지 않은 것은, 수사학이고 사상이고 간에 신문에서는 다 필요없는 것이다.

- 세월의 풍화를 견디기는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과거에, 20~30년 전에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을 보면 이미 낡고 퇴색되고 풍화되어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상을 받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세월의 풍화를 견디는 일이 힘든 것이다.

- 요즘은 사람들이 히어링 기능이 거의 없다. 토킹만 있고 채팅만 있고 듣기가 안되는 세상이다. 듣는 사람은 없이 떠드는 사람만 있다. 사방에서 떠드는데 아무도 안 듣는다. 담벼락에 떠드는 듯한 소음이 가득차 있다. 우리 사회의 언어가 타락한 모습이다. 남의 말을 잘 듣고 친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