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호빵맨이다."
오빠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님을 흘깃 보자마자 "진짜 닮았다"며 웃었다.
트위터를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나와, 트위터를 아직 시작하지 않은 우리는 '유명인 한 번 보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막걸리 번개에 참가했다. '상명대 미디어센터'만 기억하고 있던 탓에 약간 헤맨 뒤 번개 장소를 찾았다. 약속시간에서 불과 10~15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미 두 테이블이 꽉 차 있었다. 뻘쭘한 우리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었다. SBS 스티커가 부착된 카메라가 사람들을 찍고 있었다. 같은 상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하나 둘 사람들이 더 오더니 대표님이 오셨다. 카메라가 따라왔다. 긴장됐다. 내 자리는 벽 쪽, 대표님 맞은 편이었다. 카메라 앵글이 잡히기 어려울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왠지 좀 더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노 대표님이 난생 처음 번개를 때리신 이유는, 급 공수된 남원산 허브잎 막걸리 1상자 때문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이 술은 맛있었다. 지난 연말에 막걸리 누보를 먹어봤는데, 막걸리 누보가 기존 막걸리보다 훨씬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있다면 이 허브잎 막걸리는 매우 순했고 향도 좋았다. 막걸리 특유의 역한 냄새나 텁텁한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술이 술술 들어 갔다. 어느덧 막걸리가 동이 낫다. 서울 막걸리로 갈아 탔다. 알코올이 미각을 둔화시켰는지 맛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또 술술 마셨다.
운 좋게 대표님과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많았다. 누군가 운동권에서 길을 바꾼 사람들-이재오, 김문수가 대표적이겠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장수는 싸우다가 이기거나 지는 거지 질 것 같다고 편을 바꿀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노 대표님은 (대략 이렇게) 답했다. "또 지금은 나 한 사람이 지는 걸지라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승리하는 것이겠죠." 오랜 세월 척박한 한국 정치 풍토에서 진보의 가치를 지닌 정당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해왔고, 앞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사람의 진솔함이 엿보였다.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역시 하루가 지나니 잘 기억나지 않는다. -ㅅ-;;;;;; 오프 더 레코드해야 할 이야기들도 있고 ㅎㅎ 대표님이 자리를 옮기신 후 비슷한 또래들 몇몇이 함께 섞였다. 대학 이야기, 연애 이야기, 청년들이 살아가기 힘든 '이 더러운 세상' 이야기.. 비어가는 술병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에게 남는 건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많나야 아는 게 많아지고, 말할 수 있는 게 늘어나고,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늘 삭막하게 느껴졌던 서울의 밤 거리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한결 따뜻하게 느껴졌던 건 그래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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