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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하고 정확한

기분 좋은 상상

읽고, 쓰고, 생각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된 건 행운이지 싶다. 여러가지 상황이 작용했지만, '절제'를 당연시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도 크다. 물욕을 금기시하는 수도자마냥, 유일하게 맘껏 소비할 수 있던 것은 책이었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책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있으면 참 설랬다. 한창 음악 듣기에 열 올렸을 때엔 2순위로 밀리긴 했지만, 애정도 순위가 그 아래로 떨어진 적 없는 유일한 대상도 책이다.

변하지 않은 꿈 하나도 책과 연관된 일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거대한 서재. 그게 내 오랜 꿈이다. 7살인가 8살 때 처음 종로 교보문고에 간 날. 장차 이보다 더 거대하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서점의 주인이 되리라 다짐했다. 나이를 하나 둘 먹어갈수록,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할텐데 딱히 그럴 재주도, 욕심도 없어 접었다; 그냥 내 집, 내가 주인인 공간에 멋진 서재 하나를 갖고 싶다는 꿈만은 계속 간직하고 있다.

열심히 검색해도 그 스틸컷을 찾을 수 없어 이걸로 대신 ㅠㅠ


우선 빛이 잘 들어오는 곳이어야 한다. 집에서 가장 풍향이 좋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가장 넓은 방에 너무 짙지 않은 갈색의 나무로 짠 책꽂이들로 벽을 채울 것이다. 흰색은 깔끔해보이지만 때를 잘 타니, 나처럼 모든 물건의 관리에 소홀한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사각의 두 면 정도는 책꽂이로, 나머지 한 면은 큰 창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음 좋겠다. 적당히 몸을 누일 수 있을만큼 유연하되, 쉽게 기우뚱하지 않는 의자가 있어야 한다. 허리가 안 좋은 주인일테니, 의자가 너무 딱딱해도 안 된다.



손님을 맞이할 탁자 같은 건 놓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오직 나만의 공간이니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차도 마실 널찍한 책상 하나는 필요하다. 크기는 사장님들 책상처럼 큼직한 게 좋지만 모양은 이케아처럼 심플한 디자인이 좋겠다. 나무도 괜찮겠지만, 적당한 금속제가 있다면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아. 너비는 양팔을 벌렸을 때 길이와 비슷하면 되지 않을까? 정리정돈을 자주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한 번에 이것저것 들추는 일도 많으니까 그정도 너비가 적당하겠다. 책을 보관하기 위해 통풍이 잘 되야겠지만, 난방도 잘 되게 해야 한다. 오랜 심혈을 기울인 공간에서도 추위에 떨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진 않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男兒須讀五車書)'는 말이 있다. 그만큼의 장서는 되어야 '서재'라고 불러도 낯간지럽지 않을 거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긴 하지만, 현재 '내 책'이라 부르는 것이 대략 200권 정도 되는데, 서재를 꾸미는 날에는 적어도 1000권은 넘지 않을까 기대한다. 음 그 정도가 되면 정리를 잘 해야 한다. 보기에는 크기별로 정리하는 게 좋고, 책을 찾아서 읽기에는 분야나 작가별로 정리하는 게 좋다. 아직 그 방법은 좀 더 고민해야겠다. 새로 산 책들을 꽂을 공간과 기존 장서들 어떻게 구분할지, 서재 결혼은 어떻게 시킬지 통 감을 잡지 못하겠으니 말이다. 여튼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나만의 방, 나만의 서재를 꿈꾸는 일은 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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