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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혼자가 아닌 일상들 + α


#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손가락으로 TV 전원 버튼을 누르고, 발가락을 모아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는 일이었다. '홀로 어둠 속에 있다'고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과 현실은 달랐다.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어두움에 대한 공포를 달래준 건 푸르스름한 TV 브라운관의 빛, 윙-하고 돌아가는 컴퓨터 팬 소리였다. 뭘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던 그때가 옛 이야기가 되어버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다. "음..저는"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할 때 괜시리 붉어지던 눈시울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코 끝 찡할 일조차 없다. 혼자가 아닌 날들에 나는 점점 더 익숙해져간다.

삶의 한 구석이 점점 더 채워지고 있음을 느끼지만, 그건 참 감사한 일이겠지만, 가끔은 혼자이던 날이 그립다. 어젯밤처럼.
그리워 했던 순간은 잠시였다. 한낮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8월의 밤 공기, 그 속을 '함께' 걷던 때 잠시였다.
웃고 싶지도, 울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고독'이란 단어에 잠시 취해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친구가 참 그립다. 곁에는 연인이자 친구며 가족의 역할을 훌륭하게 잘 해내는 사람이 웃고 있음에도 그렇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 몇 달 전엔가는 마냥 울고 싶었다. 엄마 잃은 아이처럼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엉엉 소리내며 울고 싶었다. 그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지금, 울고 싶진 않다. 다만 자꾸 가라앉는다. 더위가 이유일까 아니면 하나 둘 뜨고 있는 공채 소식이 주는 반가움과 압박감 때문일까.

어느덧 2010년의 여덟번째 달이고, 스물다섯의 여름이 절정을 향해 간다. 꿈꾸기에는 아직 마음이 덜 무거운 때이지만, 반복되는 질문들, 그때마다 되풀이되는 답변들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막막하다. 식상하고 재미없다. 지겹다. 어차피 뻔한 내용일텐데, 그때마다 '변화'를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짰다가 결국 같은 문장, 단어로 채워진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지겹다. 뫼비우스의 띠같은 이 비루함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늘 그렇듯 곧 지나가겠지만.

# 지난 가을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를 읽었다. 봄에는 서경식의 <고뇌의 원근법>을 읽었고, 어제 막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마지막 장을 넘겼다. '전쟁'에 대해 상상하는 일이 많아졌다.  1999년이었던가? 노스트라다무스 예언대로라면 세계3차대전이 일어나 온 인류가 멸망해야 했던 그해 초,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했다. 막내동생은 아직 어렸고 엄마는 몸 푼 지 꽤 됐어도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라면부터 사놔야 하나? 막내는 엎고 가면 될까? 차를 가져가지 못하면 걸어야 할텐데.. 근처에 폭탄이라도 터지면 어떻게 하지? 엉뚱한만큼 생생했던 장면들이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됐다.

요즘 생각하는 전쟁은 다르다. 전쟁이 현재형이 아니란 점에 감사한다.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극한 상황, 살아남는 것말고는 사고가 불가능한 그런 상황에 놓여 있지 않은 현재를 살고 있다는 건 참 행운이 아닌가 싶다. 남은 생을 포화의 기억, 몸이 기억하는 굶주림과 노역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그러니까 내가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화약이 터지고 총알이 쏟아지는 전장속을 누비고 있지 않지만 삶 자체가 전쟁인 사람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조금 나은 위치에 있다는 일 아닌가 싶다. IMF의 기억은 내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남겼지만, 현실이 마냥 거기에 머물게 붙잡진 않았다. 안다. 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이름들은 충분히 '특권'이 될 조건들이란 걸. 영리하게 써먹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이 또한 알고 있다.

나는 당장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밤이슬 피할 잠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거나 빚때문에 죽을 맘을 먹어야 할 사람이 아니다. 드문 일 같으면서도 일반적인 일들이다. 이 명제들의 '이'가 나의 참이라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다행'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물(物)욕에 별 마음이 적은 것과 아예 없는 것이 다르고, 물욕만이 인간의 욕망은 아니니까. 내 욕망은 '힘' 또는 '명예'인 것 같다. 인정받는 일, 그래서 1등 혹은 지도층이 되는 일이 내겐 중요하다. 절망하고 슬퍼했던 순간은 대부분 그것이 성립하지 않던 때였으니까.

# 기자가 되면.. 행복할까? 잘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생각했던 것보다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 사실 육체적인 어려움보다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질 상황들-취재원과의 관계, 기자로서의 한계-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마 트위터를 통해 현직의 일상, 고민들을 엿보게 된 이유가 큰 것 같다. 원래 성격상 '해봐야 알지'라고 여기는 편이지만, 눈길이 가고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곧 알게 될 일들에 대해.. 그런데 '곧'이겠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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