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딕스, 전쟁
‘직시’하는 예술에 관하여…서경식의 『고뇌의 원근법』
‘예술과 현실, 둘의 간격을 얼마나 유지해야 하는가?’ 그 오랜 물음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논의된 때는 1967년이다. 불씨를 피운 것은 젊은 평론가 이어령이었고, 잘 마른 나무를 보태 논쟁의 불을 키운 것은 시인 김수영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8편의 글이 오고 갔다. 문학의 순수성과 사회적 역할을 각각 옹호하는 두 사람의 글은 정교했고 풍성했다. 세상의 관심도 뜨거웠다. 그만큼 쉽게 끝맺을 수 없는 화두였다.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 전쟁. 그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을 철저히 꿰뚫어보고, 남김없이 그렸기 때문이다. 오토 딕스가 대표적이다. 19세기 말 태어난 이 독일 화가는 두 번의 대전(大戰)에 모두 참전했다. 전쟁 후 다시 붓을 든 그가 가장 많이 그린 인물 중 하나는 상이군인이었다. 팔다리가 없고, 얼굴은 일그러진 채 거리에서 구걸하는 그에게 지나가던 애완견마저 오줌을 싸며 지나친다. ‘조국을 위한다’는 부추김에 전장으로 달려갔지만, 정치‧경제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는 그들을 외면했다. 딕스는 이 주제를 반복해 그리면서 국가권력의 독단과 자본주의 사회의 무자비함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은 전쟁의 고통, 무서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었다. 오토 딕스는 4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어 자신의 체험을 <전쟁> 제단화에 담았다. 이 그림은 출격하는 병사들, 처참한 전쟁의 현장, 파괴된 참호에서 동료와 함께 탈출하는 병사, 그리고 누워있는 자들 이렇게 네 개의 화면으로 구성된다. 마지막 그림이 제단의 밑 부분이라 순서대로 보면 꼭 시곗바늘 돌아가듯 원이 그려진다. 즉 이 제단화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아래로, 다시 위로 무한히 계속되는 전쟁의 양상이 그려져 있다.
저자는 독일 드레스덴 주립미술관의 전시실에서 <전쟁>을 관람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의 인상을 묻는다. 여행 중인 형제는 그림이 “모든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너무 잔혹하진 않느냐는 질문에 드레스덴 주민은 “아름답진 않지만 전쟁을 그린 그림으론 충분하다”며 “전쟁은 잔혹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답한다. 또 다른 주민은 “어머니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실은 이 그림보다 더 가혹했던 것 같다”고 덧붙인다. 오토 딕스는 “모든 인생의 천박함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전쟁에 지원했다. 그는 영웅신화 등 낭만을 벗기고, 자신의 눈으로 본 “전쟁, 악마의 짓”을 그렸다. 불안이나 패닉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무서움을 전하고 전쟁을 저지하는 힘을 일깨우기 위한” 그림이었다.
오토 딕스는 물론 이 책에 소개된 화가들은 대부분 생소하다. 하지만 ‘시대를 똑바로 응시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비슷하다. 참전으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의 카니발’이란 이미지밖에 그릴 수 없었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다윗의 별’을 단 채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의 불안과 공포를 가라앉은 색채로 표현한 펠릭스 누스바움. 그들은 전쟁과 학살의 시대를 똑바로 응시해 그렸다. 그들에게 ‘전후’란 없었다. 지금 발버둥치고 있는 추한 현실을, 삶에 가득 찬 고뇌를 그려내는 것이 그들의 예술이었다.
올해는 한국전쟁 60돌이다. 3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이 땅은 비극의 현장이었고 지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전쟁은 추상명사로, 기록으로 남아버렸다. 광기와 잔인함, 고통의 증언과 기억은 쉽게 잊혔다. 그 경험에서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전쟁은 있었으나 전쟁미술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추한 현실과 뼈아픈 진실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그러나 ‘예쁘기만’ 했던 한국 근대미술이 적어도 그 망각의 속도를 부채질했을지 모른다. 적어도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지만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된다”고 말하는 그 분과 몇몇 사람들의 망각에는 기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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