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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

무덤가에 꽃이 피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동시 암송대회'에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단순무식한 대회였다. 주어진 동시집이나 자료에 있는 시를 가장 많이 외우는 사람이 1위를 하는 방식이었다.

40몇편, 60몇편까지 외워봤던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낮과 밤을 시와 함께 살았다 할지라도, 대회 당일 머리속에 담겨졌던 시 한 편, 한 편 사라져버리면 말짱 꽝인 대회였다.  어쨌든 6년을 연거푸 반 대표로 참가하면서 비록 1등을 하진 못했지만 우수상, 장려상 골고루 받은 기억이 어렴풋 난다.(찾아보면 어딘가에 상장도 있을 듯) 스스로 꽤 기억력 좋은 아이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기억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당신과 함께 한 장소, 조잘대며 웃었던 이야기들, 그날의 공기와 냄새, 소소하며 상세한 장면들을 쉽게 머리와 가슴에 담아두지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알콜 때문이 아니다. 정말로! 어린날의 풍경들 또한 머릿속에서 제각각 아지랑이를 피운다.

유독 예나 지금이나 아지랑이만 가득한 기억은, 친할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낡은 베레모에 하얀 모시적삼을 입은 채 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그 분의 주름투성이 얼굴은 생생하다. 그게 전부다. 아무리 애써봐도 다른 기억이 없다. 기억력 감퇴에도 어린시절의 몇몇 장면들은 생생하든 흐릿하든 떠올릴 수 있는데, 어느 더운 날 무표정한 얼굴로 가게에 들리셨던 할아버지의 얼굴만 생각난다. 1994년 5월의 아침,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의 파리하게 짧은 머리칼 외에는.



아주 오랜만에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미수(米壽)를 넘긴 후부터 할머니는 부쩍 늙었다. 애정 크기와 상관없이, 때가 되면 찾아뵙고 안부 여쭙는 작은 일들의 중요함을 느낀다. 연한 쇠고기 한 덩어리, 작은 꽃 몇 송이 꽂힌 작은 바구니 하나 들고 갔다. 할아버지께는 드릴 것이 없었다.

빈 손으로 간 나를 맞은 무덤가는 빈 손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아버지가 사다 심은 철쭉꽃이 흐트러지게 피어 있었다. 푸스름한 어둠이 조금씩 빛을 가려오던 그 경계의 시간도 봄꽃의 화려함에는 잠깐 양보한 듯 했다. 어머니는 소녀가 됐다. 연신 "어머, 어머" 소리를 지르며 휴대폰 카메라버튼을 눌렀다. 그저 묵묵히, 하지만 평소와 달리 이 각도 저 각도 찾아가며 '폰카'를 찍던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수화기를 눌렀다. "할머니(내 증조할머니), 아버지 산소에 꽃이 정말 예쁘게 폈다"며 "시간 내서 꼭 보러 오라"는, 당신답지 않은 낭만스런 메시지를 친척들에게 전했다.


나이듦에 따라 옛 생각이 잦아지지만, 여운이 깊어지는 만큼 기억의 강도는 약해진다. 허구헌날 외워댔던 시 한 편 못 떠올리듯,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역시 반보 전진도 못할 것이다. 후퇴나 안 하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2010년의 어버이날, 낮과 밤의 푸르스름한 경계에서 본 무덤가의 꽃들, "저희를 잘 보살펴주세요라고 나지막히 읖조리던 어머니의 기도와 알듯 말듯 아버지 얼굴에 피었던 미소들의 기억은 생생한 감각으로 오래토록 남아 있을 것 같다.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이장대상 59번인 내 할아버지 무덤가에는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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