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뭐니 해도 바다는 늘 예상치보다 20%는 크니까.
마음으로 어지간히 크기를 그리고 가보아도, 그보다 20%는 항상 크다.
더 크게 생각하고 가도 그 생각의 20%는 늘 크다.
철썩이는 파도로 가슴을 온통 채우고 가보아도, 좁다란 해변을 상상하고 가보아도, 역시 20%
-요시모토 바나나 「암리타」 중
2011년 첫번째 밤은 부산에서 보냈다. 지난해 초 제주도 여행 이후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떠났다. 엄마가 차곡차곡 쌓아둔 마일리지 덕분에 비싼 KTX 특실에 앉아 편하게 가고 ㅎㅎ
갈수록 예전만큼 사진을 안 찍게 되는데, 돌아와서 보면 결국 남는 건 사진 뿐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어찌나 불확실하고, 주관적인지.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잊기 전에 조금이라도 기록해 두는 일.
사진은 태종대와 부산항 쪽. 태종대는 생각보다 크고 넓은 곳이었다. '뭐니뭐니 해도 바다는 늘 예상치보다 20%는 크다'는 <암리타>의 문장이 떠오를만큼. 따뜻한 부산의 공기도 차가운 바닷바람과 뒤섞이니 꽤 쌀쌀했다. 하지만 새해라 해도 별 감흥은 없었다. 예전엔 새해 새마음으로 다짐도 하고 계획도 세우고 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느낌도 들고, 그냥 별 생각이 없다. 태종대 돌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그래도 새해인데'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일상의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다만 올 한 해에는 좀 더 치열하고, 건강한 생각과 몸을 갖고 살아가려 한다. 바란다, 고 쓰려니 너무 운에 기대는 것 같고 수동적인 것 같다.
지난해는 일 때문에 정신 없었고, 그 덕분에 많은 걸 배웠지만 그로 인해 고민도 많았다. 행여나 '현실'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려는 일'에 대해 소홀한 건 아닌가 싶었다. 필기시험이 안 풀리고, 최종면접에서 탈락의 쓴 잔을 마실 때 그 의심과 불안은 더 커졌다. 물론 여전히 '불합격'이란 단어는 마음을 아프게하지만, 그 덕분에 예산심의과정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던 건 나름 큰 소득이었다. 문이 굳게 닫혀진 계수소위 회의실 앞에선 위축되기 마련이지만, 막상 그 좁고 공기 탁한 방에 들어가보면 별 것 없구나 하는 것도 알았으니까. 거대하게 보이는 사람과 담론들이 얼마나 단순한지를 들여다 볼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여전히 내가 층계 하나하나 밞으며 올라가고 있고,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하는 중이라 믿는다. 쉽게 빨리 피는 꽃보다 은근하고 꾸준한 게 오래 간다는 말도 믿는다. 다만 이제는 꽃봉오리가 열릴 때가 되진 않았나 싶은 거지 ㅎ
암튼 부산여행은 즐거웠다. 생각보다 덜 경직되고 어색한 아빠와 오빠(;)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고, 생각보다 20% 큰 바다를 보며 가슴이 뻥 뚫렸고, 또 점성어랑 돌돔, 꼼장어 등등 맛난 음식도 실컷 먹었으니 말이다. 막판에 살짝 꼬이긴 했지만; 가족들하고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만큼, 신경이라도 더 써야겠다. 부모님은 갈수록 아픈 곳이 많아지고, 막내동생은 갈수록 덩치가 커진다. 새로운 추억들의 가짓수는 줄어든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늘어가는 부모님의 흰 머리를 바라보는 일은 조금 많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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