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5/09

가을, 제주 # 어김없이 명절이 돌아왔다. 제주에서 맞이한 세 번째 추석. 지난해까지도 이곳에서 보내는 명절에는 어색함과 낯설음이 짙게 배어있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해진 기분이다. 집집마다 차례 드리러 다니는 옛 풍습도, 어느 곳이 몇째집인지 하는 역사도 터득했고, 육지와 달리 꼬치에 꿴 적갈, 늙은 호박을 무친 나물과 카스테라나 빵을 올리는 차례상도 익숙해졌다. 물론 여전히 어른들끼리 사투리 써가며 나누는 대화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친가만 해도 예전보다 차례상차림이 많이 단순해졌다지만 여전히 음식 장만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이번 추석에도 큰어머니는 먹음직스러운 생선과 닭찜, 여러 야채와 돼지고기를 잘 다져 섞은 동그랑땡, 두부전과 녹두전, 약과 등을 준비하셨을 테지. 조상님께 올릴 상을 한가득 차리는 마음은.. 더보기
그땐 그랬지 약자들의 따스한 연대를 누구나가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없는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죠” 같은 대사를 실생활에서도, 허구에서도 수시로 들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많은 문장의 주어로 곳곳에서 발화됐고,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같은 위대한 인문정신도 저잣거리에서 빈번히 설파됐다. 이제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피식 웃음이 나는, 풍속극에나 등장할 법한 사어(死語)들이지만, 말로라도 그러던 시절이 어쨌든 있기는 했다. 이제는 누구도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하거나 선언하지 않는다. 도리어 나의 ‘약자-됨’은 결단코 은폐되어야 할 존재의 치부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갑과 을. 나는 내 자식이 갑이 되길 바래.” 정성주 작가가 이태 전 쓴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 나오.. 더보기
무관심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다 # 평소처럼 교대역 2호선 개찰구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많은 인파들을 피해갔다. 평소처럼 쓰레기통도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순간 멈칫했다. 분주하게 쓰레기를 정리하는 환경미화원 옆에는 웬 할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쓰레기더미를 헤집으며, 다른 한 손으로 ‘초코에몽’을 움켜쥐고 있었다. 낡은 빨대는 입 안에 들어가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을 초코우유를 목마른 짐승마냥 쪽쪽 빨아대며 그는 또 다른 마실거리를 찾고 있었다. 노숙하는 사람들,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은 수없이 봤지만 거기서 찾아낸 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처음 봤다. 순간 흠칫했다. # 평소처럼 이수역 14번 출구 앞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처럼 태평백화점 앞은 북적거렸다. 평소처럼 인파를 헤쳐가다 순간 멈칫했다. 150.. 더보기
서울에 매여버린 삶들 ​ "서울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울에서 온전히 나오지 못하고 삶만 매여 있다. 아이러니한 건 서울에 겨우 방 한 칸을 마련한다고 해도 행복해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직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야근이 너무 잦아서 애인은 회사 근처 고시원에 방을 잡았다. 통근으로 길에 버리는 시간이 줄었으니, 삶에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돈 주고 빌린 집이란 게 아주 작은 상자 같아서, 그 곳은 ‘집’처럼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빨간 버스로. 노른자를 벗어나 넓게 펼쳐진 흰자의 세계로 그는 이주했다." - , '실신청년 싣고... 달린다, 빨간버스' 중에서 더보기
새살은 돋겠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게 다친 것은 5-7살 무렵이었다. 동네 언니 집에 놀러갔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딛었고, 넘어지면서 날카로운 계단턱에 부딪쳤다. 피를 제법 많이 흘렸던 것 같다. 어떻게 집에, 병원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넘어지던 순간 계단의 느낌은, 그 질감과 모양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처음으로 큰 흉터도 얻었다. 왼쪽 눈가가 찢어져 몇 바늘을 꿰매야했고, 꽤 오랫동안 한쪽 눈가가 울퉁불퉁한 사진을 남겨야 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누군가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모를 정도로 상처는 아물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친 턱 밑 흉터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지만 남들이 잘 보지 못할 뿐이다. 내 자신은 매일 거울을 볼 때마다 확인한다.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바를 때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새살이 돋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