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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머뭇거림보다는

노무현의 회의록, 윌리엄 태프트의 욕조 [取중眞담] 기록이 힘없는 기록의 나라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사건 2009년 3월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아카이브(국립문서보관소) 설립 75주년 전시장에 거대한 욕조가 등장했다. 성인 네 명은 충분히 들어갈 이 욕조의 주인은 윌리엄 태프트. 키 180cm, 몸무게 150kg에 달했던 미국 27대 대통령이다. 1908년 12월 21일 그는 군함을 타고 파나마운하 건설 현장을 돌아볼 때 선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이 욕조를 주문했다. 전시장 한쪽에는 태프트 대통령이 욕조와 함께 초대형 침대 제작을 의뢰한 빛바랜 주문서도 놓여있었다. 100년 전 대통령이 쓴 욕조와 그 주문제작서가 지금껏 남아있는 비결은 미국의 국가기록물 관리제도에 있다. 건국의 역사는 230여 년으로 길지 않지만, 미국은 어느 나.. 더보기
수사기록 아닌 재판기록 던져버린 대법원 검찰 진술 더 믿고 '한명숙 유죄' 확정... 흔들리는 공판중심주의 "검사의 수사기록은 던져버려야 합니다." 2006년 9월 19일 대전고등법원과 대전지방법원을 찾은 이용훈 대법원장은 말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의존하던 관행을 버리고 법정에서 모든 증거를 면밀히 살핀 다음 사건의 실체를 판단해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말이었다. 이후 공판중심주의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20일 이상훈·김소영·김용덕·박보영·이인복 대법관은 사법부 스스로 공판중심주의를 져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명숙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한 양승태·권순일·김신·김창석·민일영·고영한·박상옥·조희대 대법관에게 동의할.. 더보기
10대 그룹 총수 사면복권 현황...정말 심하다 최태원 SK 회장 두 번째 사면... 10대 그룹 총수 10명 중 7명은 혜택 이번에도 '회장님'은 무사했다. 13일 정부는 제70주년 광복절 기념 특별사면 대상을 발표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6527명의 사면 대상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들어가 있었다. 최 회장은 회사 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2013년 1월 31일 1심에서 법정구속, 지난해 2월 27일 징역 4년형이 확정돼 925일째 복역 중이다. 형량도 1년 6개월쯤 남았다. 하지만 광복절 특사 덕분에 13일 밤만 버티면 다시 자유다. 복권까지 된 만큼 경영 일선에도 큰 어려움 없이 복귀할 수 있다. 최 회장이 '형집행면제 특별사면'과 '특별복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8년에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 더보기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몰랐던 대법원 판결 [取중眞담]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 판결 엠바고 논란이 뼈아픈 이유 때론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뉴스가 있다. 법원과 검찰을 담당하는 법조 출입기자들은 주요 수사나 판결 내용에 '엠바고(Embargo)'를 걸어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미룬다. 이 엠바고 대상은 출입처 안에선 모두가 알지만, 밖에선 모두가 모르는 뉴스가 된다. 7월 23일 오후 2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 판결이 그랬다. 형사사건에서 불기소나 불구속, 집행유예 아니면 무죄 판결 등을 이끌어낸 변호인에게 당사자가 지급하는 성공보수는 "선량하고 건전한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대법원의 결론은 법조계를 뒤흔들었다. 변호사 선임료의 중요한 축인 성공보수는 변호사에게도, 변호사를 찾는 이에게도 늘 고려대상이기 때.. 더보기
"'센 놈' 삼성과의 싸움... 내 모든 잠재력이 폭발했다"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3-②] 내부 고발자에서 변호사가 된 이은의씨 "나 진짜 간다, 잘 있어!" 2010년 10월 31일, 은의씨는 삼성을 떠났다. 오래 살던 집을 나오는 기분이었다.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 현관을 나서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에 박혔다. 늘 밥 먹던 구내식당, 좋아했던 나무들… 버스를 타려고 뛰다가 넘어진 자신을 잡아준 사람에게 너무 창피해서 고맙다는 말도 못한 채 사무실까지 줄행랑쳤던 기억 등 지난 12년 9개월의 삶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던 싸움에 이미 종지부를 찍은 뒤였다. 은의씨는 회사를 상대로 한 법정 다툼에서 모두 이겼다. 삼성전기는 성희롱 피해가 없었기 때문에 인권위의 차별시정권고는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회사의 주장.. 더보기
회사의 치졸한 보복 "꽃무늬 청바지 입은 적 있죠?" [나는 왜 배신자가 되었나3-①]상사 성희롱에 왕따... 그럼에도 싸우다 12년 9개월 동안 '삼성을 살았다'. 마지막 5년은 '왕따'로 살았다. 상사의 성희롱을 두고 입을 열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은의(42)씨는 숨지 않았다. 견뎠다. 삼성을 살며 싸웠다. 2010년 10월 31일, 그는 마침내 모든 싸움에서 이긴 다음 삼성을 나올 수 있었다. 는 그가 오롯이 지켜낸 삶을 인터뷰와 저서, 판결문 등을 바탕으로 기록해봤다. 이은의씨의 이야기는 2005년 6월 17일부터 시작한다. 마침내 찾아온 디데이 '안 들으면… 나와서 그 다음에 생각하자.' 걱정보다는 '에이 모르겠다'란 심정으로 은의씨는 영업인사부장 앞에 섰다. 인사부장은 그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냐, 출장은 잘 다녀왔느냐, 어떻게 할지 생각해봤.. 더보기
24년만의 무죄...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만든 검찰, 법원, 언론, 국과수는 침묵 2014년 2월 13일, '유서대필' 사건 재심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씨는 자신의 재판이 법원과 검찰에게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선고 직후 든 생각이) '재판부가 유감 표시를 안 하네?'였다. 이 재판은 제 재판이 아니다. 사법부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이고 검찰은 자기 잘못을 반성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에 더 의미가 있다. 판결 내용과 상관없이 말이다. 사법부의 권위는 저를 세워놓고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이렇게 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때 세워진다. 또 "지금 현재 검사직에는 없지만,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은 아마 제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더보기
내가 만난 ‘세월호 파란바지 아저씨’ 3월 21일 페북과 트위터에 올렸던 글로 기사에 대한 소회를 갈음한다. "어제 오전 내내 쓸까말까 고민했다. 김동수씨가 자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가뜩이나 민감한 일로 그러는 게 본인에게 더 좋지 않을 듯했다. 생명엔 지장없고, 안산으로 떠난다는 그의 소식에 생각을 정리했다. 세월호는 사고였으나 사건이 되어버렸다. 무능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살아남은 자들도 희생자 중 하나일 뿐이다. 앞으로의 날이 그들에겐 형벌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자꾸 '살아온 죄'를 말하는 이유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 혹은 당신이 무슨 잘못이냐고 할 수는 있다. 딱 거기까지다. 타인의 말은 실제하는 고통을 없애주지 못한다. 김동수씨에게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리라. 사실 나는 무기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