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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쇠뿔부터 빼고보자

[4월 1일] "쓰레기에도 돈 든다"

1994년 4월 1일 쓰레기 종량제 시범실시하다.


어린 시절, 꽃집을 운영하던 부모님의 하루는 꽃다발이나 화환장식에 쓰고 남은 줄기, 꽃잎 등을 치우는 일로 끝났다. 적갈색 고무통에 줄기만 있는 국화와 장미, 자투리뿐인 나뭇잎 등이 가득해지면 아버지는 그 위로 올라가 두 발로 꾹꾹 눌러 부피를 줄이곤 했다. 


언젠가부터 그 고무통에는 흰색 비닐봉투가 씌워졌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고무통 위에 올라가 두 발로 꾹꾹 쓰레기를 눌러댔지만, 다음 절차가 변했다. 아버지는 꽉 찬 고무통을 길 한 쪽에 비우는 것 대신, 비닐봉투의 주둥이를 오므려 매듭을 지었다. 같은 상가에 있던 청바지집 아저씨도, 미용실 아주머니도 일과를 마치면 양손에 하나 둘 비닐봉투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1990년대 중반 어느 날이었다.


'쓰레기 안 만들고 1주일 살기' 과제에 도전하는 KBS 인간의 조건 출연진. 개그맨 양상국과 김준현이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위해 지렁이를 사러간 모습 ⓒ KBS


1991년,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쏟아내는 쓰레기량은 840kg으로, 영국(357kg)과 프랑스(303kg), 일본(394kg)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경향신문> 1993년 7월 20일자에 실린 ‘여적’은 이처럼 쓰레기로 뒤덮여가는 지구는 “피부암에 걸려있는 꼴”이며 “환경학자들은 이런 지구환경의 금세기를 ‘쓰레기의 세기’라고 명명한다”고 소개했다. 


‘쓰레기의 세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민하던 정부는 마침내 ‘쓰레기 종량제’ 시행을 결심한다. 환경처는 1993년 11월 25일 “내년 4월부터 전국 31개 시·군·구에서 규격봉투를 이용, 쓰레기양에 따라 수거료를 차등 부과하는 쓰레기 종량제를 시범실시하고, 1995년부터는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다.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한 자가 그에 따른 피해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pays principle)’에 따른 것이었다.


요즘에야 필요할 때마다 규격봉투를 구입해 쓰고 있지만, 초기 방식은 달랐다. 각 가정은 지자체로부터 1인당 월 60ℓ씩, 3개월치 쓰레기봉투를 지급받았다. 환경처는 쓰레기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당시 1인당 배출량(월 72ℓ)보다 20% 적은 양을 기본봉투 기준으로 정했다. 만약 부족할 경우, 지정 슈퍼마켓 등에서 기본봉투보다 가격이 두 배로 비싼 ‘추가봉투’를 사야 했다. 


2012년 9월 10일 오전 10시부터 200여명이 동원된 부산 서면 특화거리 청소에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이 쓰레기를 치우고있다. ⓒ 정민규


익숙한 것과 결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시범 실시 첫날, 서울 성북1·2동 일대에는 일반 비닐봉지에 담긴 쓰레기가 가득했다. 대구에서는 예전처럼 비닐봉지나 상자 등에 쓰레기를 담아 버리려는 주민들과 규격봉투에 담긴 것이 아니면 수거하지 않으려는 청소노동자가 실랑이를 벌였다. 1995년 1월 4일 <한겨레>에는 시민들이 쓰레기를 규격봉투에 담지 않고 내놔 잔뜩 쌓여 있는 사진이 실렸다. 봉투 값을 아끼기 위해 폐자재 등을 태우던 카센터 직원들이 중화상을 입는 사건도 있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쓰레기종량제는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서울 은평구 의회는 시범 실시 두 달여 만에 “쓰레기 발생량이 25%가량 줄어들었다”며 ‘쓰레기종량제 조기 확대 실시’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시범실시 대상이 아닌 곳에서는 ‘우리도 쓰레기종량제를 실시해달라’고 요구했다. 


실시 후 10년 간 성적표도 괜찮은 편이다. 환경부는 2006년 ‘쓰레기 종량제 시행 10년 성과평가 결과(1995~2004)’보고서에서 “1인당 쓰레기 발생량은 종량제 전면 시행 전(1994년)보다 23% 감소하고, 재활용은 175% 증가했다”고 밝혔다. 쓰레기 발생 감소효과와 재활용품 증가효과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8조 4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쓰레기 처리는 ‘규격 봉투 사용’에서 끝나지 않는다. 매립을 하거나 소각 또는 재활용하는 절차가 여전히 남아있다. 쓰레기 매립장(소각장)은 소위 ‘혐오시설’로 여겨지고 있어 설치·운영이 쉽지 않다. 매립·소각 등 처리방식보다 더 친환경적인 방법을 찾는 것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전면 실시를 알리는 포스터 ⓒ 환경부


지자체별로 제각각인 ‘음식물 쓰레기 처리’문제도 남아있다. 2011년 종량제 또는 분리배출 방식으로 처리된 음식물 쓰레기의 일일 평균량은 약 13537톤으로, 전체 생활폐기물의 27.7%에 달했다. 정부는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확대 실시로 해법을 찾으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2012년까지 모든 지역에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확대하겠다’던 계획은 다소 늦춰졌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새롭게 도입하려는 RFID(수거용기에 전자태그 부착)시스템 등은 규격봉투방식보다 시간과 돈이 더 많이 드는 만큼 면밀한 사전 준비는 필수라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