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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 끝을 벼리다/쇠뿔부터 빼고보자

[3월 14일] 진정 난 몰랐었네

얼마나 오랫동안, 자주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데 일단 시작한다. '산하의 오역'을 벤치마킹한 '소희의 오환'이랄까.. 아직 제목도 미정이다^^;; 일단 '환경 역사'를 테마로 잡았다. 그날 그날에 맞춰 자료를 찾으려니 앞길이 막막하지만, 공부도 많이 될 것 같다. 오늘은 그 첫 번째 편, 화이트데이 특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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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3월 14일 아인슈타인 태어나다.


며칠 전부터 동네 빵집과 편의점 앞은 장사진이었다. 빽빽이 쌓인 사탕과 초콜릿 상자들 때문. 매년 3월 14일이면 한국과 일본, 대만 정도에서 볼 수 있는 ‘화이트데이’ 풍경이다. 화이트데이의 기원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는 그 가운데에서 ‘1965년 일본의 마시멜로 제조업자가 만든 마시멜로데이의 이름이 바뀐 것’이란 설을 가장 유력하게 설명하고 있다.




화이트데이 즈음,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은 ‘후쿠시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전력 공급에 이상을 일으켰다. 일본 열도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이어 또 다시 원자력 때문에 악몽을 꾸게 된 것이다. 


화이트데이-일본-원자력, 이 꼬리 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1879년 3월 14일에 태어났다. 화이트데이 앞에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보면 마치 난센스퀴즈처럼 뜬금없지만, 알고 보면 뜻 깊은(!) 단어들의 조합이 완성된다. 


유태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0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연구생활을 이어가던 아인슈타인은 나치즘의 광풍이 세계를 뒤 흔드는 모습을 보고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쓴다. 원자폭탄을 만들자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사실 이 계획을 주도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은 아니다. 1939년, 롱아일랜드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아인슈타인에게 헝가리 출신 독일 물리학자 레오 질라드가 찾아갔다. 아인슈타인에게 ‘루스벨트에게 원자폭탄을 개발하자’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아인슈타인은 몇 차례 거절했지만, 결국 펜을 들었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거대한 버섯 구름이 떴다.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였다 3일 뒤, '팻맨(Fat man)'이 떨어진 나가사키 상공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후 몇 달 동안 히로시마에서는 약 9만~17만 명이, 나가사키에선 6만~8만 명이 숨졌다. 두 도시 사망자의 절반가량은 폭탄이 떨어진 당일 집계된 숫자였고, 전체 사망자의 대부분은 일반 시민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아인슈타인은 ‘내 인생에 있어 한 가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후회했다. ‘ 만약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면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원자폭탄의 위협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냉전시대에 접어든 미국과 소련은 핵 군비 경쟁에 거침없었다. 


전쟁을,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쓰러져가는 모습을, 부모를 잃고 우는 아이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영국의 철학자며 수학자인 버트런드 러셀과 뜻을 모아 1955년 핵무기 폐기와 과학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호소하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Russell–Einstein Manifesto)’을 발표했다.


“전쟁을 없앤다면, 그 나라의 주권에는 불편한 제약이 생긴다. 하지만 상황 이해를 가장 방해하는 요소는 아마도 ‘인류’라는 말이 주는 애매모호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위험은 그들 자신이나 아이들, 손자가 겪는 것이지 대상이 불분명한 ‘인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이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이 현대 무기가 금지되면 전쟁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건 환상이다. 평화로운 시기에 ‘수소폭탄을 쓰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전쟁 때는 소용없다.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미국과 소련 두 나라는 수소폭탄 개발을 시작할 것이다. 한 쪽만 수소폭탄이 있다면, 어느 쪽이 승리할지 빤하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없애자는 협정이 최고의 해결책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중요한 목적은 이룰 수 있다. 우선 핵무기 폐기는 불안감을 덜어준다. 또 서로 ‘상대방이 약속을 지킨다’고 믿는다면, 진주만 같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두려워하며 신경질적인 불안 상태에 빠지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이 협정은 결국 (평화의) 첫 번째 단계로서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1879년 3월 14일, 평화를 사랑하고 과학을 사랑하게 될 한 남자, 아인슈타인이 태어났다.